"바다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운명은 다르다."
이 말은 요르단에게 특히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1965년, 요르단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대담한 영토 교환 협정을 통해 홍해로 향하는 운명의 관문, 아카바를 지켜냈습니다.
오늘은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체결한 이 중대한 영토 교환의 배경과 의미를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요르단의 바다를 향한 갈망
요르단 아카바는 중동 한복판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유일한 창구입니다.
하지만 독립 직후 요르단은 겨우 10km 남짓한 해안선만을 보유했으며, 이로 인해 무역, 외교, 경제적 독립에 큰 제약을 느꼈습니다.
요르단은 해상 무역로 확보 없이는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영토 교환 협상이었습니다.
1965년 요르단-사우디 영토 교환 협정
1965년,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역사적인 영토 교환 협정을 체결합니다.
요르단이 얻은 것 | 아카바 남쪽으로 해안선 약 12km 추가 확보 |
사우디가 얻은 것 | 요르단 북동부 내륙 사막 지역 일부 (와디 사르한 인근) |
주요 목적 | 요르단: 바다 출구 확대 사우디: 사막 국경선 정비 |
요르단은 이 협정을 통해 아카바 항구 확장과 해상 무역로를 확실히 장악하게 됩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내륙 사막지대에 대한 통제권을 넓히는 실리를 얻었습니다.
요르단이 아카바를 지키려 한 진짜 이유
아카바는 단순한 항구가 아니었습니다.
- 국가 생존의 관문:
아카바 없이는 요르단은 사실상 내륙국이 되어버립니다. 이는 무역과 경제, 심지어 외교적 입지에도 심각한 타격이 됩니다. - 경제 성장의 터전:
아카바 항구를 통해 요르단은 수출입을 활성화하고, 아카바 특별경제구역(ASEZ)을 조성하여 해외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 지정학적 전략지:
아카바는 이스라엘,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중동 내 전략적 거점으로서의 가치가 높습니다.
이 역사적 협정 이후,
- 요르단은 아카바를 대대적으로 개발하여 관광, 무역, 물류 거점으로 성장시켰습니다.
-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경 문제를 해결하고, 내륙 사막 관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나라는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윈윈(Win-Win) 결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요르단은 아카바를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석유 대신 얻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요르단이 아카바 항구 지역을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석유 대신 얻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토 교환 협정의 일환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상을 통해 '아카바 주변 지역'을 확보한 것은 맞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 설명드리겠습니다.
1) 배경: 요르단의 바다를 향한 갈망
1946년 요르단이 독립했을 때, 사실상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해안선이 거의 없었습니다.
국제 무역과 국가 생존을 위해 요르단은 해안선 확보가 절실했습니다.
아카바만 북쪽 끝자락에 아주 작은 통로가 있었지만, 보다 확실한 해상 출구를 원했던 것이죠.
2) 1965년 영토 교환 협정
1965년,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영토 교환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 협정에서 요르단은:
- 사우디로부터 아카바 남쪽 해안선을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해안 길이를 약 12km가량 확장)
- 대신, 내륙 사막지대 일부(와디 사르한 지역 등)를 사우디에 양도했습니다.
즉, 요르단은 석유 대신 아카바 해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토 일부를 서로 교환한 것입니다.
이 영토 교환을 통해 요르단은 아카바 항구 개발과 해양 무역을 확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게 되었고,
사우디는 내륙 사막지대 확장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3) 왜 "석유 대신 아카바"라는 오해가 생겼나?
'석유 대신 아카바를 얻었다'는 식의 오해가 생긴 이유는,
요르단이 사우디로부터 석유를 상당 부분 지원받은 시기와 영토 교환 협정 시기가 겹쳤기 때문입니다.
당시 요르단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상당한 석유 경제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는 요르단의 경제적 취약성과 사우디의 풍부한 석유 자원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즉, 요르단은 석유와 아카바를 교환한 것이 아니라,
별도로 석유 지원을 받으면서도 아카바를 위해 '영토 교환'이라는 전략적 딜을 성사시킨 것입니다.
- 요르단은 경제적으로 석유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우디 등 인접국의 경제 지원을 받았습니다.
- 그러나 아카바 확보 자체는 경제적 원조(특히 석유 지원)와는 별개의 사안으로, 정확히는 영토 협정에 따른 결과입니다.
요약하면:
👉 "석유 지원은 받았지만, 아카바는 영토 교환으로 얻었다." 입니다.
결론: 바다를 얻은 요르단, 기회를 확장하다
요르단 아카바는 단순한 해안 도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요르단 국민 모두의 꿈과 미래를 이어주는 '푸른 다리'입니다.
만약 1965년 영토 교환 협정이 없었다면,
요르단은 오늘날처럼 국제 무역과 관광, 물류 산업을 꽃피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다는 문이다. 그리고 요르단은 그 문을 열었다."
아카바는 지금도 요르단의 심장처럼 힘차게 뛰고 있습니다.